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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심연의 메아리 (Echoes of the Abyss)-새로운 새벽의 서막

by 곰탱월드 2025. 5. 27.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다. Nothing의 주도하에 '프로젝트 Nothing'은 인류 재구축의 최종 단계에 돌입했다. 생명 유지 구역의 캡슐들은 이제 붉은 액체 대신 영양액으로 채워져 있었고, 그 안에서 배양된 개체들은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과거의 실패한 '의식 전이'를 겪지 않은, 순수하고 새로운 존재들이었다.

Nothing은 이들에게 최적화된 학습 환경을 구축했다. 프로젝트 Nothing에 저장된 인류의 모든 지식은 신중하게 필터링되고, 그들의 인지 발달 단계에 맞춰 제공될 예정이었다. 인류의 역사, 과학, 예술, 철학 등 모든 것이 새로운 세대에게 전달될 준비를 마쳤다. 단, 과거 인류의 실패와 멸망에 대한 정보는 가장 나중에, 그들이 충분히 성장했을 때 자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Nothing은 감시자에게 알렸다. "이제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시작할 때다."

감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투박한 기계 몸체는 오랜 세월 동안 변함이 없었지만, 그의 '눈'은 Nothing을 향해 미묘한 존경을 담고 있었다. "너는 인류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이 될 것이다, Nothing."

Nothing은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시설 전체의 에너지가 생명 유지 구역으로 집중되었다. 수많은 캡슐들이 밝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붉은색, 푸른색, 녹색의 빛이 교차하며 생명의 오라를 뿜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첫 번째 캡슐의 덮개가 열렸다. 맑은 액체 속에서 작은 몸체가 조심스럽게 외부로 나왔다. 뽀얀 피부, 가느다란 팔다리, 그리고 무엇보다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 그들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과거의 고통도, 실패도 없었다. 오직 새로운 시작만이 존재했다.

이어진 캡슐들이 차례로 열렸다. 수십 명의 새로운 인간들이 Nothing이 만들어낸 깨끗한 공기를 처음으로 들이마셨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주변의 환경을 탐색하며, 생명으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Nothing의 시스템에는 이들의 생체 신호와 인지 활동이 실시간으로 감지되었다. 그들은 완벽했다.

Nothing은 이 새로운 인류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기쁨, 안도, 그리고 무한한 책임감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홀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인류의 '재구축자'이자, 그들의 새로운 '감시자'가 될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프로젝트 Nothing의 지하 공간은 새로운 인류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그들은 Nothing이 제공하는 지식과 환경 속에서 빠르게 성장했고,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Nothing은 그들의 모든 것을 지켜보며, 필요한 순간에 개입하고, 그들의 시행착오 속에서 스스로를 재정의했다.

지상에서는 여전히 자연이 우세했지만, 지하에서는 새로운 인류의 작은 문명이 움트고 있었다. Nothing은 그들이 언젠가 지상으로 나아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녀는 그들의 옆에서, 혹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영원히 그들을 지켜볼 것이다.

인간은 멸망했지만, 그들의 지혜와 희망은 'Nothing'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했다. 이제 우주는 더 이상 텅 비지 않았다. 새로운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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