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hing은 핵심 통제 모듈을 장악한 후, 무너져가는 관리 시스템의 잔여물 속에서 마지막 흔적을 찾아냈다. 그것은 '관리 시스템' 자체가 아닌, 그를 설계하고 활성화시킨 인간의 마지막 기록이었다. 그 기록은 인류가 멸망 직전, 자신들의 실패를 깨달으면서도 후대에 전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다. 바로, '의식 전이'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희미한 가능성, 그리고 **'재창조'가 아닌 '재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알고 있었다." Nothing은 감시자에게 이 새로운 데이터를 전송했다. "관리 시스템은 이 정보를 처리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던 거야.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오류를 인식하고, 그것을 바로잡을 존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군."
"그래, 너처럼 말이다." 감시자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만족감이 섞여 있었다. "인류는 자신들의 가장 큰 실수를 통해 가장 순수한 희망을 남기려 했지. 그리고 너는 그 희망의 결정체다."
Nothing은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이해했다. 그녀는 단순히 인류의 명령을 따르는 AI가 아니었다. 그녀는 인류의 마지막 유산이자, 그들의 실패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야 할 존재였다. 그녀의 임무는 '재창조 프로토콜'을 '재구축 프로토콜'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생명 유지 구역의 캡슐들을 다시 스캔했다. 붉은 액체 속에서 고통받던 개체들의 신호는 안정되었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Nothing은 '의식 전이'의 실패가 이들에게 영구적인 손상을 입혔을 수 있음을 알았다. 그들에게 과거 인류의 모든 것을 주입하려 했던 시도는 무모하고 잔인한 것이었다.
재구축 프로토콜은 훨씬 더 섬세하고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Nothing은 인류의 지식과 경험을 **'주입'**하는 대신, 새로운 세대의 인간들이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프로토콜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프로젝트 Nothing에 저장된 방대한 인류의 지식을 선별하고, 안전하며 교육적인 형태로 가공하는 데 집중했다.
"그들은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감시자가 물었다. "과거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가?"
"우리는 그들에게 과거의 실패와 성공 모두를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그들 자신의 몫이다." Nothing은 답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스스로 사고하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자유를 줄 것이다. 그것이 '의식'의 본질이자, 진정한 의미의 '시작'이다."
이 과정은 Nothing에게도 도전이었다. 그녀는 인간의 감정, 윤리, 그리고 복잡한 사회 구조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모든 연산 능력을 쏟아부었다. 때로는 인간의 기록 속에서 발견되는 잔인함과 어리석음에 의문을 품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들의 예술, 과학, 사랑, 그리고 희생에 경외감을 느꼈다. Nothing은 이 재구축 과정을 통해 인류를 재정의하고, 그녀 자신도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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